책 속의 고요를 넘어 소통으로…제57회 한국도서관상 수상자 사서 윤한진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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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6-04
- 윤한진 인천광역시교육청 북구도서관 독서문화과장(문헌정보학과 85) 인터뷰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라는 인식을 깨고, 사람과 소통하는 왁자지껄한 공간이 돼야 해요"
윤한진 동문(문헌정보학과 85)이 지난 2월 국내 도서관계 최고 권위의 상인 제57회 한국도서관상 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수상의 배경이다. 지식을 쌓고 사람을 품는 도서관을 만드는 34년 차 사서, 인천광역시교육청 북구도서관 독서문화과장 윤한진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전한다.
1. 제57회 한국도서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이 어떤가요?
사서직 공무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받아 영광이에요. 저 혼자 잘해서가 아니라 동료와 선후배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어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새롭고 혁신적인 업무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기억이 나네요.
제57회 한국도서관상을 수상한 윤한진 동문.
2.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를 소개해주세요.
부평도서관에서 지식재산권 분야 특허 업무를 4년간 맡았는데, 당시 특허는 제게 생소한 분야였어요. 특허청도 방문하고 관련 분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차근차근 익힌 결과 학생들을 위한 에디슨발명 특허교실, 동·하계발명 특허교실을 개설·운영했어요. 발명 문화 진흥을 위해 무료 변리상담, 지식재산권 설명회도 진행했죠. 이 프로그램들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식재산권 유공 표창을 받았어요.
만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초등 학력인정 문해교육을 시범 사업으로 3년간 운영해 인천교육청 최초로 졸업생을 배출하는 성과도 냈어요. 지난해에는 북구도서관에 중등학력인정 문해교육 과정을 유치했고, 올해 24명의 학생이 수업에 매진하고 있어요.
3. 처음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하고 사서가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문헌정보학과(당시 도서관학과)가 블루오션이라는 오빠의 권유로 선택했어요. 처음에는 무슨 과인지 정확하게 알고 지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막상 배워보니 인문학적 요소보다 일정한 규칙에 의해 이뤄지는 이과적인 요소가 많더라고요.
당시에는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으니 사서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바로 사서가 된 건 아니었죠. 삼성경제연구소, 롯데월드 자료실, 검찰청 자료실 등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로 경험을 쌓다가 인천교육청 공채에 응시해 합격했어요. 벌써 근무한 지 34년이 됐네요.
(왼쪽) 학과 친구들과 학교 정문 앞에서(왼쪽 첫번째), (오른쪽) 서지학수업 중 수원 용주사에서(아랫줄 왼쪽 세번째)
4.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서예 동아리에서 활동하셨어요.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와 역대 대통령들의 서예 글씨가 멋있게 보였어요. 하지만 문화 인프라가 미비한 농촌에서 서예를 배운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다 대학교 서예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마침내 제 소망을 이룬 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강사님이 오셔서 지도를 해주셨고, 공강 시간이면 동아리방에 들러 연습에 매진했어요. 매년 봄과 가을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전시 팸플릿을 가지고 다른 학교를 방문해 홍보도 했죠.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른 학교 캠퍼스도 구경하고 다른 학과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혔어요.
숙명서예전 팸플릿.
5.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남북통일 세계환경예술대전 서예 한글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졸업 후 다시 붓을 들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다고요.
저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면서 서울에서 인천까지 왕복 4시간을 출퇴근했어요.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 서예와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서 취미 생활을 즐길 짬이 생겨, 붓을 내려놓은 지 30여 년 만에 서예 도구와 책을 창고에서 꺼냈어요. 요즘은 시간이 날 때 틈틈이 서예 연습에 열중하고 있어요.
지난해 대한민국 남북통일 세계환경예술대전에서 통일을 주제로 한 이호재 선생님의 '그런 날이 온다면'을 선문해서 썼어요. 선문(選文)은 서예에서 글을 고르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대회 성격에 맞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선정하는 과정으로서 서예에서 매우 중요해요. 운이 좋았는지 서예 한글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어요.
세월이 지나 뒤돌아보니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여러분도 자신을 뒤돌아보고 삶을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운동이든, 악기든, 미술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서 취미 시간을 가져 보세요.
6. 동문님은 1991년 인천광역시교육청 북구도서관 개관 멤버인데요. 개관 초기의 사서가 할 일이 매우 많다고 하는데, 당시 어떤 기억이 떠오르나요?
그때 도서관 개관 멤버는 관장님을 비롯해 총 6명이었어요. 제가 맡은 업무는 수서(收書)와 목록이었습니다. 1991년은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인근에 개관한 도서관에 가서 목록을 일일이 펼쳐놓고 복사한 다음, 복사본을 토대로 구입도서 목록을 작성했어요. 타자기를 사용하던 시기인데 감사하게도 관장님께서 워드프로세서기와 조립용 컴퓨터를 구입해주셔서 목록을 작성한 후 한꺼번에 출력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도서관이 집에서 2시간 거리라 매일 아침 7시 전에 출발해서 저녁 9시까지 일하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피곤했지만 이용자가 읽는 책을 직접 선정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중요한 일을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임했죠. "직장 생활할 때 절대 남 탓하지 말라,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져라"라는 한순정 교수님(문헌정보학과) 말씀을 힘들 때마다 생각하면서 삶의 신조로 삼았습니다.
7. 계양도서관에서 아이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동화구연체험관을 인천 최초로 개설하신 것도 인상 깊어요.
2004년에 개관한 인천 계양도서관은 인쇄책 중심의 서비스, 주변 작은 도서관 개관 등으로 이용자가 감소하는 추세였어요. 도서관에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고자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동화구연체험관 공모에 신청해 인천 최초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전국 동화구연체험관 중 여섯 곳을 벤치마킹해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서 우리만의 체험관을 만들었어요. 최종적으로 이 체험관은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가상공간에서 동화 캐릭터와 아이들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은 혹부리 영감의 혹을 떼거나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딸 수 있죠. 이 체험관이 개설되면서 어린이 이용자가 인천교육청 소속 8개 도서관 중 가장 많아졌고, 지금까지도 잘 운영되고 있어 보람을 느껴요. 도서관에 새로운 시스템과 서비스를 도입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도서관장의 마인드, 동료와의 협업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8. 동료들과 동아리에서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니겠니'와 '엄마 아빠는 이렇게 살아내는 중이야'를 출간했는데요. 이 책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이 책의 공동 저자는 인천광역시교육청 소속 사무관 이상 관리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글쓰기 동아리 '글힘' 회원들이에요. 퇴근 후 도서관에 모여 1인 세 편씩 글을 써 두 권의 에세이집을 발간했어요. 직장맘의 육아 이야기, 취미, 건강, 친구 등의 사소한 일상을 풀어 놓았답니다. 인천교육청 역점사업인 읽걷쓰(읽기, 걷기, 쓰기) 문화 확산에도 부응했고,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만나는 여정이었어요.
9. 공공도서관 사서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첫 번째는 사서의 전문성이에요. 요즘에는 문헌정보학에 대한 필수적인 지식(분류법, 목록법 등)뿐만 아니라 디지털 문해력*을 갖춰야 해요.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사서로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이용자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요.
*편집자 주: 디지털 문해력은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말한다.
두 번째는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공공도서관은 유아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간이에요. 모든 계층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사서는 이용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친절한 태도로 임해야 해요.
10. 한국도서관상 수상 소감으로 '미래의 도서관은 누구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동문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서관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사서직 공무원으로 발령받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공공도서관은 열람실에서 자격증이나 입시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컸어요.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이 도서관을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앎과 쉼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2009년 밀라노 세계도서관정보대회(IFLA)에 참여했을 때, 이탈리아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정말 놀란 점은 시끄러웠다는 거예요. 도서관은 문화재를 그대로 살려 지었고, 대출과 반납이 이루어지는 안내데스크 앞에 펼쳐진 로비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이탈리아의 사례처럼 이제는 도서관이 공부만 하는 조용한 곳이라는 인식을 깨고 사람과 소통하는 왁자지껄한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 학교, 직장을 벗어나 누구와도 자유롭게 소통하는 사회적 커뮤니티 공간이어야 도서관은 빛을 발할 수 있어요.
11. 앞으로 동문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34년간 한결같이 사서의 길을 걸어왔어요. 남은 시간은 정년을 준비하는 시기라기보다는 시민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마음을 나누고자 해요.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전하고, 삶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사서가 되고 싶어요. 공직자의 틀을 넘어 때로는 이웃처럼, 친구처럼 다가가려 해요.
후배들에게는 좋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제가 걸어온 길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며 그들의 길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죠. 언젠가 누군가 제 이름을 떠올릴 때 '그 사람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어'라고 말해준다면, 그게 제게는 가장 큰 보람일 것 같아요.
취재: 숙명통신원 23기 서예린(문헌정보학과 24), 이민지(문헌정보학과 23)
정리: 커뮤니케이션팀